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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리뷰

이만큼 가까이, 정세랑

by 솔이스토리 2022. 8. 5.


평생가는 친구라는 게 있을까?
어릴때부터 전학을 많이 다녀서 오래된 친구가 없기도 하지만
인간관계를 오래 유지하는 의지와 능력과 에너지도 없었어서
그냥 그 시절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만 기억속에 남아있을 뿐인데
이런 오래된 친구들이 잔뜩 등장하는 책이나 드라마를 보면 한번씩 궁금해진다
기억속의 그 친구들은 지금 뭐 하고 있을까
그 시절 나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지금 연락하면 어색하겠지..?
네가 싫어서 멀어진게 아니라고, 나에게 먼저 친구하자고 다가와줘서 고마웠다고 말해주고 싶다
(물론 싫어서 멀어진 친구도 있다^^..)
물론 그 친구들이 없어서 지금 외롭거나 그렇진 않지만, 새로운 친구를 사귈 기회가 거의 없는 나이가 되니까
그 시절의 나를 기억해주고 같이 지나온 시간을 추억할 수 있는 존재가 나말고 더있다면 좋을 것 같단 생각이 든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내 옆에 있는 친구들에게 더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퐁퐁 샘솟는 책이었다..!!


그거 그렇게 익숙해지면 안 되는 일이야, 너 거기서 최대한 빨리 도망쳐야 해, 라고 말할 만큼 나는 단단하지 못했다.
안온하고 좁은 세계에서 성장은 유예되고 만다. p.30

"화낼 일에 함께 화내주지 않으면 친구가 아닌 거야, 그치?" p.84

좋은 어른들은 좀처럼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나쁜 어른은 내세울 권위가 없다. 그러니 원활히 작동하는 권위란 건 좀처럼 목격하기 어렵고 그런 의심으로 나는 어른을, 감독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p.104

여자애들 마음속엔 어떤 경보장치 같은 것이 작동하곤 한다. 이를테면 명절마다 제수음식을 하는 친척 어른들의 얼굴에 떠오른 불행의 반점 같은 것에 반응하는 센서 말이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똑같으니 돈 많은 놈이나 고르라고 말할 때의 체념과 섞인 맡기 싫은 기름냄새.
그렇구나, 자칫 잘못하면 인생이란거 아주 쉽게 비루해지는 구나. 아니, 웬만해서는 비루함을 피할 수 없구나.
여자애들은 두려워하며 자란다. 아주 작은 신호에도 과민하게 반응하게 된다. 부스럭거리는 소리만 들려도 달아나는 먹이사슬 하위의 동물들처럼... 피하고 싶은 인생이 순식간에 덮쳐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p.110

정말 분노를 조절할 줄 모른다면 그때 민웅이를 공격했어야 했다. 초래될 결과를 가늠할 수 있다면, 그래서 상대를 골라 때린다면 광기가 아닌 비겁함만이 관여했을 뿐이다. p.127

선천적으로 중독에 약한 사람은 극히 일부뿐이라는 연구 결과에 대해 읽은 적 있다.
중독되는 뇌를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는데도 무언가에 중독된다면, 그건 중독 대상이 문제가 아니라 다른 스트레스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떤 것에도 그다지 중독되지 않고 열심이 아니라면, 찬겸이는 꽤 행복한 상태일지도 모르겠다. 주연이가 회사일이 잘 안 풀릴때 인터넷 쇼핑과 홈쇼핑을 과도하게 하는 모습을 보면 더 그런 생각이 든다.
p.150

송이는 심한 생리불순에 시달렸고 비행이 없을 때도 제대로 자지 못했고 눈밑은 갈수록 어두워졌지만, 그때의 송이가 없었더라면 그다음 단계의 삶도 찾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p.155

"자꾸 사람들이 나보고 성질 좀 죽이라는데, 그런 사람들이랑은 말이 안 통해. 성질 죽이면 아무도 지켜주지 않는다는 걸 왜 몰라" 이상한 일이다. 나는 주연이가 지독한 말들을 할 때가 좋았다. 나에겐 예방주사 같은 말들이었다. 가끔은 예방주사 정도에서 그치지 않고, 세상에 대한 물렁한 기대들을 외과적 수술로 제거해주는 느낌도 들었다.
p.187

내 생각에, 인간은 잘못 설계된 것 같아. 소중한 걸 끊임없이 잃을 수밖에 없는데, 사랑했던 사람들이 계속 죽어나갈 수밖에 없는데, 그걸 이겨내도록 설계되지 않았어 p.225

서로의 결점에 대해 너그러워졌다. 민웅이의 무기력에 대해, 찬겸이의 엘리트주의에 대해, 주연이의 쓰디쓴 부분에 대해, 송이의 방랑벽에 대해...아마 친구들도 나의 어떤 부분을 참아주고 있을 것이다.
못나면 못난대로 살아 있어달라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한껏 멀어졌다가 다시 가까워지고 나서, 우리는 늘 서로의 안위를 걱정했다. p.226

다트는 썩 늘지 않고, 남자친구와도 그다지 통하지 않는다. 그런데 통하지 않는 데에서 오는 안심 같은 게 있다는게 신기하다. 통하지 않으므로 크게 해칠 수 없다. 통하지 않으므로 그 사람의 일부가 내게 옮아붙지 않는다. 통하지 않으므로 내안의 아주 나빠진 부분을 굳이 보여주지 않아도 된다. 통하지 않으므로 너무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지 않아도 된다. 통하지 않으므로 기억나는게 없다. 통하지 않으므로 눈이 마주쳐도 아프지 않다.
다트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다트를 할 때의 평안함 같은 걸까. 점수가 깎여나가 딱 맞아떨어지면 좋고, 아니면 그냥 리셋 하면 된다.
p.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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